일단 송주원을 피해야 한다. 다시 서울로 가야 할까? 이 밤에? 어떻게? 나는 차도 없는데. 피하고 나면, 그다음은? 그러나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식당 앞에 진을 치고 있던 스태프들이 나를 아는 척하며 반겼다. “아, 음악감독님도 이제 오셨네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송주원을 피하기는커녕, 당장 닥친 회식 자리에서도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았다. 공...
분위기를 바꾸려는 건지 뜬금없이 튀어나온 당돌한 농담에 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너도 그러지 그랬어.” 송주원은 좋은 사람이다. 그를 겪을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처럼 좋은 사람은 마찬가지로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나처럼 모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그를 아주 많이 사랑해줄 성격 좋고 다정한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야 했다. ...
촬영은 밤늦게까지 계속되었다. 송주원은 그의 작품에서도 느껴지듯 촬영할 때 아주 꼼꼼한 편이었다.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썼고, 마음에 차는 장면을 찍을 때까지 쉽게 타협하지 않았다. 한 씬을 찍을 때도 배우에게 여러 번 기회를 주어 다양한 장면을 얻어냈다. 한마디로 같이 일하기 까다로운 타입이었다는 것이다. 송주원은 의상부터 작은 소품까지 아주 세세한 ...
전송을 누르자마자 메시지가 읽음 상태로 바뀌었다. 곧장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전화를 거절했다. 그래도 또 전화가 걸려왔다. 내리 세 번을 거절하고도 끝없이 울려대는 전화에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그만 좀 해!” 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쏘아붙였다. “사람이 전화를 안 받으면 받기 싫은 줄 알아야 할 거 아냐.” 답은 없었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 소...
송주원과 나는 촬영 현장인 영포 항에 들어섰다. 영포 항은 영포에서도 가장 끝자락에 있었다. 영포라는 지명으로 유추할 수 있듯 영포라는 지역 자체가 바다와 면하고 있긴 했으나, 송주원의 말대로 관광을 올 만한 곳은 아니었다. 어업에 종사하는 일부 주민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집이 비어 있어 온 동네가 허전했다. 이 작고 고요한 마을에 영화 촬영을 준비하는 이들...
주인공인 ‘을’은 믿었던 상사의 횡령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절망해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고, 자신의 인생이 모두 망가진 날이자 자살을 시도한 날 아침에 다시 눈을 뜨게 된다. 되돌아간 시간, 또 한 번 반복되는 하루. ‘을’은 구렁텅이에 빠진 자신의 인생을 구제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처럼 망가진 다른 사람들의 삶까지 구...
뚜르르…… 단조로운 통화연결음이 이어졌다.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토하고 싶을 만큼 긴장이 치밀어 떨리는 숨을 뱉을 때였다. 세 번째 통화연결음이 끝나기도 전에 송주원이 전화를 받았다. - 우주 씨? 내 전화만을 기다린 것처럼 몹시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 때문에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지고 말았다. “……네, 여보세요.” 나도 모르게 존댓말이 튀어나왔...
유려한 손이 아래로 내려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 드러났다. 지독한 배신감에 젖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 얼굴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슨 뜻이야, 그 말?” 거칠게 갈라진 숨결이 섞인 물음이 따갑게 가슴에 박혔다. 그러나 상상한 것처럼 아프지는 않았다. “무슨 뜻인지 알잖아. 헤어지자고.” 나는 그 없이 사는 나를 쉽게 그려 볼 수 있었...
나보다 한참 큰 놈을 업고 걸으니 이 추운 날에도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욕이 수십 번은 나왔다. 좁은 모텔 복도를 비틀거리며 걷는 내내 열이 뻗쳤다. “송주원, 이 개새끼. 내가 너랑 또 술 먹나 봐…….” 이를 갈며 송주원을 모텔 침대에 내던지자, 싸구려 매트리스에 고개를 처박은 그가 무어라 웅얼거렸다. 나는 뻐근한 목덜미를 주무르며 인상을 구겼다...
“전 영화의 그런 면이 좋아요. 모든 테이크가 실수가 아니라 시도라는 거.” 고개를 들자 어김없이 시선이 맞았다. 그는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시도해 봐요, 저랑.” 송주원이 내 쪽을 향해 술잔을 들이밀었다. 짙은 오크 향이 얕게 출렁거렸다. 잔과 잔이 부딪치자 종소리를 닮은 울림이 퍼졌다. 그 진동에 술잔을 움켜쥔 손끝이 반사적으로 움찔했다...
나는 어디든 목적지가 필요했다. 이 길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몰라도 이은형이 나를 버리고 간 곳에 계속 정체되어 있고 싶지 않았다. “너한테는 아무 감정 없어. 아니, 솔직히 말하면 네가 불편해. 같이 일하면 더 불편하겠지. 근데…… 나는 일이 필요해. 뭐든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필요해.”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점점 ...
***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무렵이 되면 부산의 괜찮은 호텔이란 호텔은 대부분 예약이 꽉 찼다. 나는 방이 없어도 크게 낙담하지 않았다. 어차피 편치 않으리라 각오하고 떠난 길이었다. 호텔이 아니라 모텔, 그도 어려우면 찜질방에서 쪽잠을 자더라도 좋았다. 그러나 이은형은 작은 불편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저기 전화를 몇 통 걸더니 용케 깔끔한 호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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